추성훈 혹은 아끼야마

2008. 2. 28. 02:56Audio & Video

 

KBS 다큐스페셜 - 추성훈 혹은 아끼야마 - 2005.11.13
영상 출처 : KBS
 
추성훈.
정말 멋있는 남자.
앞으로 계속 잘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5일 올림픽 체조 경기장 `케이원(K-1) 히어로스`(HEROS) 대회. 종합격투 경기인 이 대회에서 한국 팀과 외국 팀의 대결이 펼쳐졌다.
총 10경기까지 한국팀은 2승 8패로 열세를 보였다. 이제 한국 선수는 추성훈(30)만이 남아 있었다. 그의 상대는 가라데를 기본으로 한 오쿠다 마사카쓰(일본)였다.
유도선수였던 추성훈은 그라운드 기술로 상대를 압박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추성훈은 소나기 펀치를 퍼부으며 오쿠다에게 1라운드 티케이오(TKO)승을 거뒀다.
완벽한 승리였다. 심판은 추성훈의 손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양어깨에 붙은 태극기와 일장기를 번갈아 가며 두드렸다.

경기 후 마이크를 잡은 추성훈은 관중들에게 “한국에 돌아와서 시합을 해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자신이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저는 지금 한국 사람이 아니에요. 일본인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여기 가슴 안에는 그리고 지금 여기 들어가 있는 피는 완전 한국인입니다..."

그는 한풀이를 하듯 그렇게 외쳤다.

13일 방송된 ‘KBS 스페셜’이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적에 방황하고 좌절했던 한 종합격투기 선수의 삶을 조명해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떠돈 유도계의 풍운아

방송에 따르면 추성훈, 일본 이름 아키야마 요시히로는 재일동포 4세로 촉망받는 유도선수였다.
유도선수인 아버지 추계이씨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체육관을 찾았던 성훈에게 유도는 인생의 전부였다.
아이의 꿈은 오로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넘어야 할 벽이 있었다. 바로 국적이었다.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던 아버지는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고 추성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에게 일본 국가대표 선수가 돼 세계 대회 출전할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일본 유도계의 촉망받는 선수였던 추성훈은 1998년 한국행을 택했다.

당시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부산시청팀에서 활약했던 그에게 남은 과제는 한국 국가 대표가 되는 것뿐이었다.
일본에서 받던 차별은 더 이상 없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 앞엔 조인철과 용인대라는 장벽이 버티고 있었다.

추성훈이 활약했던 81kg급에서 조인철은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그 라이벌은 한국 유도계를 좌지우지 했던 용인대 출신이었다. 승부마다 석연치 않은 판정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국에서 열린 국제 대회 우승으로 잠시 태극마크도 달아봤지만 그뿐이었다. 2진 선수나 나가는 아시아 대회 출전이 고작이었다.
그에게 세계를 메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추성훈은 “바꿔야지 말을 하면 안된다, 귀화해서 일본에서 유도해야지...”라는 말을 남기고 분루를 삼키며 2001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가족들도 그때만은 말리지 못했다. 그는 `아키야마 요시히로`란 이름으로 불렸다.

이듬해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81kg 결승에서 일본 국가대표 아키야마 요시히로가 한국 선수를 이기자 “조국을 메쳤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때 그는 “저는 원래 한국 사람입니다”는 말을 남기고 둘러싼 기자들을 헤치고 돌아섰다.

국적은 일본, 그러나 가슴속엔 영원한 한국인

그 후 추성훈은 종합격투기 선수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일본 유도계는 그에게 전용 유도회관을 제시하며 전향을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추성훈은 더 거친 무대로 향했다.

아버지 추계이씨는 “아키야마에게 애완견 같은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은 그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다”며 자신의 아들을 대변했다.
결국 일본 유도계의 자랑 아키야먀 요시히로는 지난해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르며 종합격투가로 나섰다.

그 후 추성훈은 국적을 고민하지 않았다. 태극기와 일장기를 양 어깨엔 단 그에게 국적을 강요하는 일은 쓸모없는 일이었다.
일본은 그가 나고 자란 터전이었고, 가슴속엔 분명히 한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일본 이름 아키야마 요시히로는 한자로 ‘추산성훈(秋山成勳)’ 추성훈이란 이름에 일본식 이름 뫼산(山)을 추가했다.
메일 주소는 영문자로 `choo sung hoon`이었다. 그는 그렇게라도 자신의 이름 ‘추성훈’을 남겨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를 아는 지인들과 가족들 역시 한국과 일본을 따지지 않았다. 추성훈이든 아카야마 요시히로든 같은 인물이었다. 추성훈 역시 그랬다.

“아키야마도 나고, 추성훈도 나다. 귀화해서 추성훈이란 이름은 사실 사라졌지만 내 이름이 추성훈이라는 것은 (가슴 속에) 새겨져 있고
가족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고 평생 사라지지 않는 이름이다.”

한편 방송 후 시청자 게시판은 평소보다 많은 200여건의 글들이 올라오면서 추성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네티즌들은 추성훈이 겪은 시련에 안타까움을 나타내며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한 네티즌(zgn2)은 "추성훈이 조국을 매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를 버린 것이다"며 "추성훈은 분명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자 우리의 동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이디가 ‘hantt83`인 네티즌은 “이유를 모르고 일본으로 귀화해 한국선수를 이기고 금메달을 땄을 때 많이 미워했다”며
“이제는 당신 팬이 될 것 같다”고 추성훈을 자랑스러워했다.

현재 추성훈은 지난해 종합격투기 데뷔 무대를 가진 이후 5전 4승 1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2005년 자료.